삼각지‘옛집’의 국수 할머니 배혜자

국수 그릇 가득 담는 건 사랑!

궂은비 내리는 삼각지 로터리. 어디선가 배호의 애수 어린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서울 삼각지 토박이들에게 추억의 명소가 된 국수집 ‘옛집’을 찾은 날은.

25년 동안 변함없는 맛으로 사랑받아 온 ‘옛집’은 지하철 4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삼각지역 좁은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낡고 허름한 모습 그대로, TV 시대극의 촬영 세트장 분위기였다. 대여섯 평이 될까 말까 한 공간에 자리한 네 개의 탁자와 손때 묻은 의자가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한차례 소나기 같은 점심 손님을 치른 오후 3시. 주인 배혜자 씨는 저녁 손님을 위해 연탄 화덕의 불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가 화덕 위 냄비 뚜껑을 열자 구수한 멸치 국물 냄새가 골목 가득 퍼졌다. 다시마, 양파, 멸치를 넣고 새벽부터 우려낸 국물이라고 했다. “점심 안 자셨지? 따끈하게 한 그릇 말아줄 텐 게 요기 허소.” 배 씨의 전라도 사투리가 더 구수하게 들렸다.

“우리 집에 오려거든 빈속으로 와야지라. 그래야 맛나게 드실 것 아니오. 난 손님들이 얼른 묵고 더 달라고 할 때가 제일 좋습디다. 손님들 묵는 거만 봐도 배가 부르당게요.”

점심시간이면 옛집 골목은 국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배 씨는 “2,000원짜리 국수 한 그릇 먹겠다고 찌는 더위도 잊은 채 몇 시간씩 줄을 서있는 손님들 생각하면 미안해서 죽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식당을 늘리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데는 통 관심이 없다. 그는 손님들이 10년, 20년이 지나도록 잊지 않고 이 식당에 찾아오는 것은 고향 같은 푸근함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유치원생이었던 아이가 커서 그만한 아이를 데리고 식당을 찾아올 때 세월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요 앞에 있던 육군 본부가 대전으로 이사할 적에는 군인 양반들이 대전으로 이사 오라고 난리였지라. 도봉구로 이사 간 상명고 선생님들도 학교 가까운 데로 오라고 여러 번 얘기했고요. 내가 안 가니까 군인 양반들은 부하들 데리고 오고, 선생님들은 학생들 데리고 오드만이요. 미안혀서 더 잘해 주려고 허요.”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아는 이들이 수없이 다녀갔다. 고향 어머니의 손맛을 찾아오는 이들이 내지르는 감탄사도 가지가지다. “야, 저 의자 아직도 있네!” “어머, 돈 받는 바가지도 그대로네” “세상 다 변해도 우리 어머니 인심은 여전하네” 등등.

이 집 국수를 먹어야 한국에 온 것 같다며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오는 이민자나 해외 출장자도 많았다. 물론 아직 다녀가지 않아 소식이 궁금한 단골도 몇 명 있다. 5년 전 TV 방송 프로그램에 ‘옛집’이 소개되는 걸 보고 담당 PD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 한 교포 사업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편지에는 “‘옛집’ 주인 할머니는 IMF 시절 사업에 실패해 세상을 원망하던 나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준 분”이라는 감동적인 사연이 담겨 있었다. 7~8년 전 식당을 찾은 그 손님을 배 씨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손님들 묵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당게요”

그 사람이 ‘옛집’을 찾은 것은 1998년 겨울이다. 그날도 배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정부터 끓인 멸치 국물을 다른 솥에 옮겨 담았다. 자정 무렵 연탄불 위에 앉히는 멸치 국물은 정확히 4시간 정도만 끓여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보다 덜 끓이면 비린내가 나고, 더 끓이면 텁텁하다는 것. 그 때문에 배 씨는 지금껏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식당 문을 여는 시각이 새벽 6시. 전날 밤 술을 마시거나 야근을 한 사람들에게 시원한 멸치 국물은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아침을 먹으러 온 그 시각, 남루한 옷차림에 피골이 상접한 40대 남자 하나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배 씨는 첫눈에 노숙자임을 알아봤다고 한다.

“많이 굶었는지 기운이 없어 보이데요. 물어볼 것도 없이 국수 한 그릇 푸짐하게 말아 줬더니 게 눈 감추듯 비우더라고요. 그래서 한 그릇, 또 한 그릇을 말아 줬지라. 그제서야 살겠는지 냉수 한 그릇 떠달라고 허길래 떠왔더니만 벌써 도망가고 없더라고요. 어차피 돈 받을 생각이 없었는디 뒤도 안 돌아보고 담박질 허길래 ‘넘어지면 다친 게 천천히 가라’고 소리쳤지라.”

배 씨는 “배고픈 사람에게 국수 몇 그릇 말아 준 것 가지고 과분한 치사를 받았다”며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문명 사회를 비웃듯 ‘옛집’에는 없는 것이 많다. 우선 5,000원 넘어가는 메뉴가 없다. 배 씨의 친정인 전남 승주에서 직접 공수해 갈아 만드는 콩국수가 5,000원으로 가장 비싸다. 그 외 온국수, 비빔국수, 수제비, 김밥 등은 모두 2,000원 내외다. 벌써 12년째 값은 그 자리다.

큰딸 김진숙 씨(45세)는 어머니가 병날까 걱정돼 식당 일을 거들면서 어머니가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알게 됐다고 한다.
두 번째는 계산대와 금고, 카드 결제기가 없다. 25년 동안 노란 플라스틱 바가지에 손님이 직접 돈을 내고 알아서 거스름돈을 챙겨 가는 게 이집의 전통이다. 카드 결제기는 사용할 줄 몰라서 아예 들여놓지 않았는데, 가끔씩 현금이 없어 난감해하는 손님이 있을 때는 그냥 보낸다고 한다.

“그래도 사고 한번 없었는디 작년 5월 컴컴헌 새벽에 젊은 남자가 돈을 몽땅 챙겨가 깜짝 놀랐지라. 쫓아가서 받아오긴 혔는디, 한 달 내내 마음이 편치 않습디다. ‘필요해서 가져갔을 것인디 그냥 둘 것을’ 하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옛집’의 국수는 한 그릇 값만 내면 두 그릇이고 세 그릇이고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멸치는 전남 목포에서, 고춧가루·마늘·깨 등의 갖은 양념은 전남 해남에서, 소금은 전남 영광에서 20년 넘게 거래한 사람에게서 받아올 정도로 1급 재료만 쓴다. 그러다 보니 국수를 하루에 수백 그릇씩 팔았어도 생각만큼 큰돈은 못 벌었다. 그런데도 배 씨는 “세상 물정 모르던 내가 애들 공부 시키고, 내 집 마련혔으면 됐지 더 벌어 뭣 한다요”라고 말한다.

배 씨는 1981년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3남1녀 자식들을 키울 일이 막막해 국수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식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어머니 밑에서 큰 말썽 없이 자라 막내를 빼곤 모두 가정을 이뤘다. 이제 손자 손녀들 재롱 보며 편안하게 사셔도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20년 넘게 해온 일인디 그만두면 병 안 나겄소. 그라고 나는 이 일이 재미나요. 음식 장사를 하다 보면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지만 말이오.”

그는 “손님이 음식을 남기면 ‘어메, 맛이 없었는 갚다’ 싶어 걱정이고, 깨끗하게 다 비우고 가면 ‘어메, 더 줄 걸 그랬는 갚다’ 싶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진 : 이창재
  • 200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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